레오나르도다빈치(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그의 성장배경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 피렌체의 근겨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다빈치는 귀족인 아버지와 농사꾼 딸인 어머니의 무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고 합니다.
부유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덕분에 그는 음악과 수학등의 여러가지 학문을 배울 수 있었으며, 자유롭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생아라는 신분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친분이 적절하지 못하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더욱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그는 15세 때부터 아버지의 친구이나 유명한 조각가인 베록키오의 도제로 들어가 회화, 스케치, 조각 등의 미술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스승인 베록키오는 뛰어난 실력을 보인 제자 레오나르도다빈치 때문에 자신은 그림에서 손을 떼겠다며 절망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베록키오의 아틀리에에서 수석화가로 일하던 다빈치는 인체의 해부학을 비롯하여 자연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동물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들을 익히면서 본인만의 화법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기독교가 유럽의 정신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시체 해부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다빈치는 몰래 그 일을 감행하여 상당히 정교한 인체 해부도를 그려 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인체 내에 혈액이 흐른다는 사실을 유럽에서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포기를 모르는 실험정신 그리고 과학적 사고방식은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인 원근법과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그에 따른 수학적 비율등을 완성시켜 갔습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가 베록키오 밑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제작한 첫번째 작품은 1472년부터 1474년 사이에 만들어진 성모영보 이며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 앞에 나타나 아기예수를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성서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천사는 순결의 상징인 백합을 가지고 왔고, 천사의 소식을 듣는 마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들고 있습니다.
많은 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였지만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작품 만큼 사건의 엄숙함과 극적 긴장감이 잘 살아 있는 것은 없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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